현대 사회의 전문가, 준전문가, 비전문가

민주주의, 전문가, 여론형성

'논의되고 있는' 주제와 직접적인 관련이 있는 얘기는 아닙니다.


보통 프로와 아마츄어의 차이를 얘기할 때 전문적인 역량의 차이와
기본 개념을 얼마나 숙지하고 있는가, 그리고 해당 업계에서 공식적으
로 어떤 위치에 있는가나 해당 업종에서 직업적으로 종사하고 있는가가
얘기됩니다. 프로(professional)와 전문가(specialist)는 개념이 좀 다
르기는 합니다만 전문가와 비전문가를 구분하는 기준 역시 프로와 아마
츄어의 구분과 비슷합니다.


전문가를 좁게 해석하면 현재 해당 업계에 종사하면서 나름의 일가를
이룬 이들을 말하는 것 입니다만 약간 넓게 잡아보면 해당 업계와 관련
업계에 종사하며 보수를 받는 분들 정도(대학원 조교급)까지 전문가 계
층에 속한다고 말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거꾸로 말하면 독학자나 해당
업계에 종사했으나 현재는 은퇴한 이들은 전문가라고 하기 어렵다고 할
수 있습니다.

독학자나 은퇴자는 그 나름의 고견을 낼 수 있고 그것에 일정한 의의가
있기는 하지만 현재 업계의 전문가들과의 피드백 과정을 하고 있다고 보기
어렵기에 전문가 계층으로 분류되기 힘듭니다. 자신이 정리한 지식과 주장
이 업계의 동료들과 공유되지 못하고 학문적, 사상적으로 고립된 연구자를
전문가로 보기 힘들다는 게 제 생각입니다. (아마 이 부분에서 전문가와
매니아의 차이가 있는 것 같습니다.)

우리가 전문가를 전문가로 인정하고 그들의 발언을 특별히 받아들이는
것은 전문가들이 그러한 위치에 이르기까지 들인 시간과 비용, 노력을,
非전문가 계층과는 구별되게 투자했고 그 결과물이 기존 업계에서 인정
되기 때문입니다. 대표적인 결과물인 논문이나 저서를 공인받는 과정은
상당히 보수적인데 그때문에 발생하는 문제점-폐쇄적인 구조에서 기인하는
신개념에 대한 부정적 선입견 등-도 있지만 연구의 연속성이라는 면에서
포기할 수 없는 과정입니다. 축적이 되지 않으면 발전싸이클을 만들고 유
지하고 고도로 집적하여 다시 재축적할 수 없을 겁니다.

전문가에 비해 비전문가는 숫적으로 많지만 앞서 말한 투자가 부족하기에
해당 사안에 대해 심도깊고 실효성있는 발언을 기대하기는 힘들고 가변적이
고 감정적인 방안을 내놓을 가능성이 매우 높습니다. 다만 기존의 업계 전
문가들에 비해 자유로운 사고, 다른 측면에서의 문제제기가 가능하기에 전
문가 계층이 일방적으로 계도하려고 하면 안되고 그럴 수도 없습니다. 비전
문가들이 가지는 비전문적인 지식에 기초한 '신화'들은 전문가 계층 입장에
서 본다면 '기가막히는' 얘기들이지만 현실적으로 헤게모니를 가지고 있는
것도 무시할 수 없으니 효과적인 소통방법을 찾아 오류를 지적해야 합니다.

전문가와 비전문가 사이에 있는 이들이 準전문가인데 앞서 말한 효과적인
소통에서 중요한 역할을 할 수 있고 해야 합니다. 전문가들은 좋게 말하면
열심히 공부하고 노력한 공부벌레이지만 해당 분야에만 파고들었을 가능성이
높고 다른 분야나 일반적인 비전문가와의 소통에는 서툰 경향이 있습니다.
이것을 전문가 개인의 소양문제로만 보면 '자기 분야에만 매몰된 꼴통'이라고
할 수도 있습니다만 전문가와 비전문가가 나눠질 수 밖에 없는 현대 사회의
파편화되고 복잡한 구조를 감안하면 연결 및 소통과정을 구조적인 측면에서
생각해야하지 않을까 합니다.

준전문가는 전문가 계층에 편입되기를 희망하여 이를 계획적으로 준비하는
과정에 있거나 강한 현학적(또는 잡학적) 취향에서 비롯된 동기로 말미암아
해당 분야의 지식을 습득하고 정리하여 자신의 '자산'으로 만들고 있는 이들
이라고 생각합니다. '공인된' 전문가에 비해서는 '투자'가 부족하지만 적지
않은 시간과 비용, 노력을 들이고 있다는 점에서는 비전문가에 비해 해당 분
야와 업계 상황에 대한 이해의 정도가 높거나 고유개념을 숙지하고 있을 개연
성이 높습니다. 다만 '아직' 완전한 전문가는 아니기에 비전문가적 속성 역시
가지고 있을 개연성 또한 높습니다. 그게 장점이기도 하고 단점이기도 할텐데
장점을 키우고 단점을 줄이는 부분은 일단 개인소양에 맡겨야 할 것 같습니다.

준전문가는 전문가의 '용어'를 번역해주고 비전문가의 '요구'를 전달해줘야
합니다. 전문가와 비전문가가 직접 소통을 시도하고 그것이 잘 이뤄진다면 다
행이겠지만 실제로는 서로 소외되는 상황이 너무 많은데 이것은 양자가 서있는
기본 입장이 다르고 상황을 받아들이는 방법론의 차이인 것 같습니다. 아무리
학계에 명망있는 학자나 재계에서 인정받는 CEO라도 이상한 자리에서 이상한
사람들 만나서 바보되는 경우가 있습니다. 그래서 전문가들은 비전문가들 옆에
잘 가지 않습니다. 괜히 스타일 구기게 되니 말입니다. 반대로 신중하고 심도
깊은 제안이나 질문을 하다가 전문가들에게 무시되는 일반인들도 있습니다. 그
래서 비전문가들은 전문가에게 직접 문의하는 것을 두려워합니다. 괜히 '무식'
이 탄로나게 되니 말입니다.


여기까지 읽으시고 '뭔가 계서적인 것 같다'고 생각하실 수도 있습니다. 하
지만 현대 사회는 다종다양하게 세분화된 분야들이 존재하고 2가지 이상 분야
에서 전문가로 인정받을 수 있는 이들은 매우 드뭅니다. 즉, 내가 고분자화학
계에서 전문성을 인정받는 연구자라도 모던락에서는 동호인 정도의 지식을 가
지거나 전혀 문외한일 가능성이 높습니다. (저는 두 분야 모두 전혀 모릅니다.)
그렇다면 어느 분야의 전문가라고 목에 힘줄 필요는 없습니다. 만일 그런 생각
을 한다면 정말 '자기 분야에만 매몰된 꼴통'일 것 입니다. 자신의 능력과 의
지에 자부심을 가지는 것과 그것의 한계를 알고 겸손함을 유지하는 것은 동시
에 가능한 것이고 그래야 합니다.


3줄 요약:
비전문가는 전문가를 존중해야 하고 전문가는 비전문가를 무시해서는 안된다.
준전문가는 전문가와 비전문가 사이를 연결할 수 있고 그래야만 한다.
우리는 모두 어느 분야의 전문가이면서 다른 분야의 비전문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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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愚公 | 2006/12/29 23:58 | Criticism Board | 트랙백(1) | 덧글(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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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racked from 愚公移山 at 2007/01/01 12:17

제목 : [금주의 이글루스 포스팅 트랙백] 12월 4구간
*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남는 건 제 계좌로 부쳐주십시오.) * 모음 선정 기준은 전적으로 愚公 개인의 상대적이고 자기중심적인 것입니다. * 개인신상이나 사생활 내용이 과도한 포스팅의 경우 논란 여지가 있을 것을 우려해 제외합니다. * 스포일러(ex:다른 내용없고 '절름발이가 범인이다' 한줄만 있는 경우), 뜬소문의 경우 사회윤리에 어긋난다고 생각하므로 제외합니다. * 논쟁의 중심에 서는 것이 부담되시......more

Commented by 메피스토 at 2006/12/30 12:14
공감합니다.
Commented by blus at 2007/01/05 07:04
전문가의 전문성을 신뢰할 만큼 일반인 또한 얼마정도의 '지식'은 있어야 하는데 그게 안되는 제가 무서워요.
링크신고 드립니다^^
Commented by 메르키제데크 at 2007/01/07 23:14
어떻게 보면 가위바위보 같네요.
Commented by 愚公 at 2007/01/08 11:11
blus / 그래서 준전문가들 역할이 중요한 거죠. 그런데 보통은 사용하는 단어나 태도로도 어느정도 분별이 가기는 하지요.
메르키제데크 / 아, 그런 면도 있군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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