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조선 사고 해결책- 태워버리면 어떨까.

대형 해상기름 유출 사고에 대한 대책 idea

기름띠 소각작전


예전에 소각처리한, 그것도 공중폭격으로 해결한 사례를 본적이 있어서 찾아봤습니다.


1. 한국환경정책평가 연구원 홈페이지 '해양에서의 유류오염' 中

http://www.kei.re.kr/03_info/03_soc_ss_read.asp?no=90

바. 유류유출 사례

(1) 토리캐넌호

① 1967년 3월 18일

② 영국 남서해안 세븐스톤암초

③ 원유 93,000kℓ

④ 방제조치

○ 선박예인이 곤란하여 폭격연소 결정

○ 해안청소에 사용된 유처리제의 생물에 대한 악영향이 문제되고 유처리제 사용방법의 적정성에 의문 제기됨

○ 암벽해안에는 유처리제가 효과가 있었으나 모래해안에는 효과가 없다고 판명

⑤ 피해상황

○ 영국남서해안과 플랑스 해안 300km가 오염됨

⑥ 사고후 처리 및 교훈

○ 영국과 플랑스측에 방제요원들이 방제절차를 철저히 주지해야 하는 점의 중요성 인지됨

○ 영국은 해양오염방지법 제정

○ 프랑스는 파르마계획(긴급구조계획) 도입


2. 해양경찰공무원을꿈꾸는사람들-KCG 다음카페 법규관련정리 中

http://cafe163.daum.net/_c21_/bbs_search_read?grpid=l6CJ&fldid=2cEA&contentval=0000Bzzzzzzzzzzzzzzzzzzzzzzzzz&nenc=rTxKkab1Cdw-NaUE7FVS7w00&dataid=11&fenc=iOnzMCOTv_A0&docid=CDd55bvU&from=tot&q=Torry%20Canyon

(한글자료 중에는 사건에 대해 가장 자세한 설명이 나와있음.)

3월 26일
이날은 부활절로서 공휴일이며 Scilly도에 영국수상이 체류할 예정이라고 알려졌다.
악천후가 지속되고 25-30knots의 풍속으로 말미암아 이초작업이 불가능하므로 27일 아침에 재개할 예정이었다. 강풍과 조류로 인하여 기름의 유출범위가 큰 폭으로 확대되었고 각지의 연안으로 오염되었다.
영국수상은 본선이 이초된 후 영국영해내에 진입하는 것을 거부할 권리를 유보한다고 말하였다.

1700 : 2척의 예인선의 예인색(chain) 절단되어 본선이 우현으로 기울고 파도가 전갑판부를 씻어 갔다.

1845 : Bridge 후방 3번탱크 부분에서 선체가 두동강이 나며 부러졌다. 선수부, 선미무 다같이 좌현으로 4-5도 기울어졌다. 구조선 선장은 지금에 이르러서야 전손으로 보지 않을 수 없다고 보고하고 이 때문에 기름유출은 더욱 증가하였다.

3월 27일
풍력은 4-5이며 서쪽 파도가 높게 일고 바다의 상태가 더욱 악화되었다. 아침이 되자 두동강이 된 선체가 전후부 30feet로 분리되며 30도로 기울어졌다. 곧 두 개의 부분이 상호 직각으로 되었으며, 선수부의 1·2 번 탱크에 구멍이 뚫렸고 선미부의 동요가 심하고 만조시에 연돌이 수몰되었다.

1700 : 선수부에 새로운 균열이 생기고 밤이 되자 드디어 선체는 삼등분으로 절단되었다. 연안에 오염이 확산되어 100milles에 달하였다. 선체가 절단됨으로 하여 26일 27일에 3만톤의 기름이 더 유출되었다.
해안의 오염방제를 위하여 2,100명의 군대가 출동하였으며 주민의 참여를 호소하였다. 항구에는 방잠망에 의한 오일펜스를 설치하고 26척의 함정으로 처리제를 삼포하는 한편 영국정부는 저녁무렵 선내에 잔류하는 기름 4만톤을 폭격으로 소각시킬 것을 결정하였다.

3월 28일
서북서의 강풍으로 인하여 선체는 4분되었다
0830 구조업자는 구조작업을 단념하였다.

0930 : 구조업자는 구조작업의 실패와 작업이 포기를 선주에게 통지하고 선주는 이를 수락하였다.
영국정부는 1000-1900사이에 부근해역을 항행하는 선박과 항공기에 경고를 하고, Sevenstones등대선을 이동시켰으며 Torrey Canyon호 선주에게 정부의 결정을 통지하였다. 악천후로 인하여 계획했던 오일펜스 설치도 불가능하게 되었다.

1600 : 폭격을 개시하였다. 영해군의 박카니아 폭격기 8대가 1,000파운드의 고성능 폭탄으로 우선 deck를 파괴한 다음 20대의 호카한타 전투폭격기가 항공연료와 소이탄, 네이팜탄, 염소산나트륨탄을 투하하여 선체는 2,000 feet에 달하는 폭연으로 둘러 쌓였다.

1900 : 폭격은 완료되었고 화재는 4시간 반동안 지속되었으며 선체는 거의 침몰되었다.

3월 29일
정오부터 1530까지 폭격반복 5회에 이르렀다. 1600경 3회의 폭발이 일어나고 대화재가 발생하였다. 1900시 또다시 폭격을 하였으나 화재는 없었다.
2일간의 폭격에 참가한 비행기의 수는 54대이고 고성능 폭탄투하량은 28톤(30톤의 기록도 있음)이며 네이팜탄은 8개, 항공연료 투하량은 5200-5400gallons에 달하였다. 한편, 해안의 오염은 영국의 남서부 각지로 확대되었고 프랑스 브르다뉴 지방도 5일내에 영향을 받는다는 경보를 발표하였다. 29일의 처리제 산포에는 함정 40척이 동원되었다.

3월 30일
아침은 평온한 상태였으며 종일 해상이 평온하고 바람은 거의 없었다.
Torrey Canyon호 부근의 수마일내에는 유출유가 없다는 해군발표가 있었다. 오후 폭격으로는 화재가 발생하지 않아 선내에는 이제 잔류가 없다고 판단되어 폭격을 종료하였다. 프랑스 정부는 방제작업 준비를 개시하고 처리제 400톤 및 함정 20척을 브레스토 항에 직격 대기시겼다.



3. 위키피디아 Torrey Canyon 항목

http://en.wikipedia.org/wiki/Torrey_Canyon#_note-0

The ship broke apart after being stranded on the reef for several days and bombed by aircraft.


4. BBC 오늘의 소사

http://news.bbc.co.uk/onthisday/hi/dates/stories/march/29/newsid_2819000/2819369.stm

It was decided at first light this morning to carry on bombing. Holiday makers gathered on the cliffs
to watch the towering column of flames and smoke which could be seen up to 100 miles away.


5. David N Axford 의 개인홈피

http://www.axfordsabode.org.uk/torreycn.htm

On Tuesday 28th March 1967 the Fleet Air Arm sent Buccaneers from Lossiemouth to drop forty-two 1,000lb bombs on the wreck. This was followed by the Royal Air Force in sending Hunter jets to drop cans of aviation fuel to make the oil blaze. Seventy five per cent of the bombs were on target and both sections of the wreck were on fire.

However, exceptionally high tides had put the blaze out and it took further attacks by Sea Vixens from the Naval Air Station at Yeovilton and Buccaneers from the Naval Air Station at Brawdy as well as more RAF Hunters with napalm to ignite the oil until the wreck was free from oil.

Crowds of holidaymakers were watching the spectacle from the shoreline at Lands End. Though the bombing was declared a success the Press made much of the twenty five per cent of misses on a stationary target.

After Daring had completed her Guard ship duties we then sailed back to Portland to continue with our work-up.



좀더 자세하고 공신력이 있는 설명을 알고 계신 분들은 제보해주세요.

by 愚公 | 2007/12/13 01:58 | Research Object | 트랙백(1) | 덧글(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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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racked from Cliomedia at 2007/12/13 07:45

제목 : 원유 유출 사고에 관한 자료들
태안 앞바다에서 벌어진 유조선 사고로 서해안에 유출된 원유 때문에 많은 어민들이 기름과의 전쟁을 치르고 있다는 보도를 보았습니다. 그 과정에서 역시 드러나는 관리자들의 무신경과 관계당국의 면밀하지 못한 대책에 관한 보도도 보았고 일부 블로그에서 제시하고 있는 대책들도 관심을 가지고 보았습니다. 큰 일이벌어지고 나서야 문제점을 깨닫고 여러 곳에서 그 문제점들을 이야기하지만 또 시간이 지나면서 흐지부지 되는 모습을 우리는 많이보아왔습니......more

Commented by 파파울프 at 2007/12/13 10:21
공중폭격이나 소각에 의한 유전 화제 처리나 유조선 뒷처리는 봤지만 그것이 해안까지 퍼진 상황에서는 아무 소용 없는 것이었군요...은근히 기대를 했는데 말입니다... 역시 옷이나 보내야 겠습니다.
Commented by 愚公 at 2007/12/14 11:17
파파울프 / 글쎄요, 해안까지 퍼졌다고 해도 왜 태우지 않는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_-a
원유가 잘 타지 않는다는 게 일반적인 인식이었는데 이미 예전에도 태워버린 사례가 있긴 하잖습니까. 물론 유출된 원유 전체에 대해 실행한 것은 아니지만요. 뭔가 더 얘기거리가 있는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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