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자신에 대해 기록하고, 우리 자신에 대해서 생각하자

느티나무의 '내가 만일 대통령이라면?' 기획 원고



 



 


 


- 우리 자신에 대해 기록하고, 우리 자신에 대해서 생각하자



BY 愚公


기록이란 무엇인가


일반적으로 기록이란 말은 후일에 남길 목적으로 어떤 사실을 적음 또는 그런 글을 뜻합니다. 좀 더 엄밀하게 기록학계에서는 개인이나 조직이 활동이나 업무 과정에서 생산하거나 접수한 문서를 기록이라고 합니다. 다만 이때의 문서는 종이+문자의 기록형식뿐 아니라 일정 매체에 고정된 정보나 데이터를 포괄하기에 전자 문서나 시청각 기록을 포함합니다. 비록 도서, 데이터 세트(data set), 창작물 등이 기록인지에 대한 학문적 차원의 논의가 분분하기는 하지만 인간의 의식적인 활동에서 만들어지고 그에 대한 가치 있는 정보를 장기적으로 제공할 수 있다는 점에서 인류의 기억이자 기록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럼 이런 기록을 만들고 보존하고 활용하는 것은 왜 필요한 것일까요. 



기록에는 어떤 효용이 있는가


첫째, 기록에 기재된 내용의 활용. 보통 어떤 사안에 대해 궁금할 경우 신문이나 잡지 기사를 보거나 전문가에게 문의를 하기도 하지만 관련 서적을 보는 경우가 있습니다. 기록의 경우 기록을 만들어 낸 조직이나 기록관에서 관련된 기록을 찾아볼 수 있습니다. 특히 공공기관의 경우 기록관리 법령과 규정들이 제정되어 운영되고 있기에 도서관에서 책을 찾아보듯이 관련 기록을 찾아보기가 쉬워지고 있습니다. 이런 기록은 특정한 활용 목적을 위해 만들어지며 그 활동 내역을 반영하고 때문에 기록은 어느 활동이나 사상의 흐름이 어떻게 이루어졌는지를 확인할 수 있는 증거로서의 역할을 가지며 그 내용에 기재된 각종 정보와 지식을 훗날에 다양한 차원에서 활용할 수 있습니다.

 

둘째, 기록이 만들어진 활동내역의 참조와 재현(再現:reappearance). 예를 들어 제가 보험설계사이고 1년 전에 A라는 고객에게 ‘묻지도 따지지지 않고 보장’이라는 보험 상품을 장기계약 했다고 생각해봅시다. 일반적으로 이런 경우 약관을 제시하며 이 보험 상품의 장단점, 수익률 등을 설명하고 계약서를 작성해서 고객과 1부씩 나눠가지게 됩니다. 1년이 지난 후에 A는 불의의 사고를 당해서 지금 자신에게 이 보험내용이 적용되는지 궁금해졌습니다. 바로 저에게 전화를 해서 물어볼 수도 있지만 아무래도 계약서를 먼저 읽어보겠지요. 다른 면에서 보면 저는 계속해서 ‘묻지도 따지지지 않고 보장’을 판매하기 위해서 업무내용을 기록하고 그 내용을 주기적으로 추가할 것입니다. 그런 기록이 보험 상품 판매라는 활동을 반복하기 위한 재현적 역할을 하는 것입니다. 즉, 과거에 무엇이 행해지거나 결정되었는지 기억하거나 입증하는데 필요할 때 마다 기록이 요구될 것입니다.


셋째, 기록 내외에 존재하는 맥락적 정보의 조직화. 기록의 내용에 존재하는 정보는 언뜻 보기에 파편화되어 있는 것처럼 보입니다. 특히 기록을 만들어내는 조직이나 업무가 복잡할  수록 그렇게 여겨지기 쉽습니다. 하지만 실제로 대부분의 기록은 개별 기록으로서 독립적으로 존재하지 않고 서로 간에 관련성을 띕니다. 그리고 인간의 실제 활동 역시 표면적으로 보기에는 굉장히 분절적으로 보이지만 그런 활동들 사이에는 직간접적인 연관성이 있습니다. 때문에 인간의 활동이나 거기서 비롯된 기록을 분석하기 위해서는 그런 연관 관계를 평소에 체계적으로 정리해두어야 하며 이 역시 기록화를 통해서 이뤄지게 됩니다. 물론 이런 관련성은 굉장히 복잡하고 고차원적이기에 완벽한 수준의 정리는 거의 불가능합니다만 최소한의 노력으로 최대한의 효과를 거두기 위해서는 필요한 것이며, 이런 맥락적 정보를 조직화하면서 그런 활동과 기록에 대한 이해 자체를 고양시킬 수 있습니다. 특히 이런 부분이 필요한 이유는 기록을 이용하게 되는 사람이 기록을 직접 만든 이만이 아닌 후임자나 다른 분야의 비전문가, 그리고 우리의 후손이기 때문입니다.


넷째, 개인과 집단의 역사와 정체성 확인. 반농담조로 얘기해서 인간이 다른 동물들과 구분되는 이유 중 하나는 기록을 만들고 그것을 다시 활용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오늘 내가 무엇을 했는지, 거기서 알게 되거나 느낀 점은 무엇인지, 앞으로 어떤 후속조치를 취할 것인지 하는 평가와 계획이 가능하려면 무엇이 필요할 까요. ‘인간이 암소에게 배워야 할 것이 한 가지 있다면, 그 것은 되새김(反芻)을 할 수 있는 능력이다’라고 니체가 역설적으로 말했듯이 인간은 반성을 할 수 있습니다. 그런 반성을 하기 위해서는 반성할 수 있는 능력도 필요하지만 반성할 수 있는 대상, 어떤 활동의 내역이 남아있는 기록 역시 필요합니다. 특히 중요하거나 복잡한 사안에 대해서는 단편적인 기억보다 체계적인 기록이 요구됩니다. ‘기록이 기억을 지배한다’는 얘기처럼 기록은 개인과 집단의 역사와 정체성을 규정하고 해석의 출발점이 됩니다. 인간의 활동을 기록화하고 기억함으로서 과거, 현재, 미래는 분리되어 존재하지 않고 우리 의식 안에 함께 존재합니다.



공공기록 관리의 한계를 넘어서자


지난 2006년에 개정 입법된 ‘공공기록물 관리에 관한 법률’은 현재 한국의 공공업무활동에서 만들어지는 기록을 관리하는 원칙과 방식에 대한 법률입니다. 그 이전에도 ‘공문서 관리 규정’과 ‘사무관리 규정’ 등에 의한 공문서 관리는 이루어져오기는 했습니다. 다만 몇 가지 문제는 첫째, 관리 대상이 공문서라는 데서 알 수 있듯이 국가기관에서 행정업무에 사용된, 결재문서만이 대상이었습니다. (도면류나 시청각 기록물도 규정상 포함되어있기는 했습니다) 둘째, 전체 국가기관에 적용되는 법령들이 아니었기에 일부 행정부처에만 영향력이 행사되었습니다. 셋째, 관리 규정의 기반 논리가 기록관리적, 역사적, 사회적, 정치적 이론에 있다기보다 행정편의적이었습니다. 넷째, 사적 영역-민간-에서 만들어진 기록의 관리나 보존에 대한 프로세스나 결과물이 부실했습니다.


물론 현행 법규에서 개선된 부분도 많고 아직 부족한 부분도 있습니다. 다만 국가법령으로 규정하고 관리할 수 있는 기록의 범위에는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고 생각합니다. 예를 들어 2004년에 대통령 탄핵 사건이 있었습니다. 하지만 이에 관련하여 국가에서 보존결정을 내리는 기록의 수량과 내용은 국가기관이나 공공기관에 관련한 업무에서 만들어진 기록 정도입니다. 당시 있었던 촛불시위나 전체 국민들 또는 일부 계층의 반응, 총선까지 미쳤던 영향 등에 대한 기록은 많지도 않고 다양하지도 않을 겁니다. 민간 언론이나 개개인이 정리한 기록들은 현재 존재하기는 합니다. 문제는 그 기록들이 일관된 체계 안에서 관리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고, 과연 그 기록들이 얼마나 오래, 얼마나 당대 상황을 유기적으로 보여줄 수 있게 보존되는가 입니다. 수십, 수백 년 후 ‘서기 2004년 대한민국 대통령 탄핵 사건’에 대해 알아보려고 한다면 대부분 국가기관에  의해 만들어진 기록에 의존해야 할 텐데 다면적인 상황에 비해 아주 일부 기록들만 남아있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개인적으로 이러한 상황을 보완․개선하기 위해서 다양한 민간기록 관리 조직이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이론적으로는 단일 기관이나 조직이 국가적인 차원에서 모든 사회의 기록을 모으고 관리하는 것이 효율적으로 생각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이런 전일적(專一的)인 관리는 다양한 사회의, 다양한 요구를 반영하기 어렵습니다. 보존해야 한다고 생각되는 기록의 종류, 기록을 보존하는 목적과 방식 역시 개인이나 집단별로 다양하다는 것을 고려해야 합니다. ‘조선왕조실록’이라는 기록 유산을 만들었던 조선시대에도 모든 기록을 국가에서 수집하여 관리하지는 않았고 오늘날 우리 역시 조선시대를 조망하는데 실록에만 의지하지 않고 다양한 민간 기록을 참조합니다.


더 나아가서 기록화의 민주화가 이뤄져야 합니다. 기록화란 하나하나의 기록을 만들고 그것들을 일관적 체계 하에 집합적으로 만드는 것입니다. 민주화는 국가기관의 민주주의에 대한 존중을 바탕으로 진행될 수는 있지만 시작되거나 완성되는 것은 아닙니다. 깨어있는 시민의 조직된 힘이 민주화와 민주주의의 시작이며 최후의 보루이듯이, 기록화의 민주화를 위해서는 어떤 기록을 만들 것인지 또는 어떤 기록을 보존할 것인지, 그 기록들을 어떻게 조직할 것인지에 대한 고민과 실천이 필요합니다. 어떤 기록을 보존할 것인가는 어떤 활동의 기억을 보존할 것인가라는 문제입니다. 민주주의는 완벽한 결과를 보장하지는 않지만 보다 합의적인 의사결정을 지향하는 체계를 만들 수 있는 토대입니다. 다양한 기록이 존재한다는 것, 그런 기록을 보존하는 다양한 요구들이 있다는 것을 파악한다면 우리 스스로의 기록을 만들고 남기는 목표와 방법을 생각해봐야 합니다. 그만큼 다양한 계획들이 세워질 수 있기에 여기서 아주 구체적으로 플랜 B를 제안할 수는 없습니다만 기본적인 지향점은 몇 가지 얘기해 보겠습니다.


첫째, 기록을 만들고 관리하는 목적을 명확히 할 것. 왜 이 기록을 만들거나 수집하여 보존하려고 하는가. 이 기록이 우리에게 어떤 가치가 있으며, 어떤 정보를 전달할 수 있는가.


둘째, 기록 관리 방식을 체계적으로 계획하고 실행할 것. 어떤 방법으로 기록을 입수할 것인가. 이 기록을 관리하는 주체와 조직은 어떻게 구성할 것인가. 보존이나 활용의 수단이나 제한을 어떤 식으로 수행해야 하는가. 분류와 정리, 기술(記述:description)은 어떻게 할 것인가.


셋째, 다른 기록 관리 조직과의 협력을 지향할 것. 다양한 관리 대상 및 목적, 방식을 선택한 개인이나 조직과의 정보 및 기록물 교환이 이뤄져야 합니다. 아무래도 비슷한 성향의 개인이나 조직 간의 교류가 활발하겠지만 기본적으로 이런 협력에는 제한을 두지 않아야 합니다. 앞에서 예를 든 ‘대통령 탄핵 사건’에 대해 찬성하는 이들도 있었고, 반대하는 이들도 있었습니다. 이들이 각각 해당 사안에 대한 기록을 보존할 수 있고 각자에게 유리한 기록을 보존할 수도 있습니다. 그 자체는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만 기록 관리 방식이나 소장한 기록에 대한 정보의 교류 및 연계에는 힘써야 합니다.


얼핏 보면 상당히 거창하고 부담되는 얘기입니다만 이런 지향점들은 미래의 후손들을 위해서만이 아니라 현재의 우리의 모습을 전체적으로 이해하는데 필요한 부분일 것 입니다. 또한 이런 지향점을 지금 당장 모두 완벽하게 해결하지 못한다고 자괴감을 느낄 필요는 없습니다. 중요한 것은 왜 이렇게 기록을 만들고 관리하는 방식이 필요한지 이해하고 그 방법론을 가다듬으면서 조금씩 실천해가는 것입니다. 이런 활동을 통해 우리는 우리 자신을 더 이해하고 현재의 타인이나 미래의 후손들에게 우리를 알릴 수 있습니다. 상대방을 이해하고 자신을 알리려는 자세가 사회와 개인의 장래를 더 풍부하고 알차게 만들 수 있는 토대라고 생각합니다.





 

by 愚公 | 2009/07/10 11:30 | Record culture | 트랙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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