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재 라인'과 문서행정 제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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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제 담소자리에서 나온 이야기를 정리.


 1. 오늘날 결재문서들을 보면 기안자(담당자), 기안자의 상급자, 상급자의 상급자, 최고 관리자

    순서로 서명란(결제란)이 존재함 

 2. 조선시대의 고문서(문헌이 아닌)들에는 그런 형식의 서명(수결)란이 존재하지 않음


 (여기서부터는 추정)  


 3. 보통 역사학, 기록학 개론서에서는 전근대시대인 삼국~조선시대에도 관료제, 문서행정이

     실시되었다는 서술이 나옴

 4. 그러나 2를 기반으로 생각해보면 그 당시의 관료제나 문서행정은 오늘날과 큰 차이를 가지

     는 것 같음

 5. 아마도 전근대시대에는 기안자(담당자)가 오늘날과 같이 특정 사안에 대한 디테일한 기안을

     하지 않았을 것 같음

 6. 오늘날에는 1과 같이 기안자의 기안문이 거의 시행내용의 핵심을 이룸 
 
    가감은 있으나 대부분 기안내용 그대로 시행됨 (만일 시행하지 않아야 겠다고 상급자가 판단하면

    결제하지 않고 반려)

 7. 사실 2 중에서도 오늘날의 기안문에 해당하는 문서는 거의 남아있지 않음.

 8. 군주는 조서, 교지와 같은 문서를 공표하는데 그 내용중 실제 시행내용이 언급됨

 9. 전근대시대의 '행정체계'에서는 오늘날과 같은 '결재 라인'이 존재하지 않았을 것 같음

10. 예를 들어 이런 프로세스가 아니었을까
 
     하급 실무자가 어떤 시행 내용을 문서(명칭이 기억안남)로 작성하여 재상회의 등의 비서

     기구나 측근에 전달=> 비서기구에서 내용을 정리하여 보고(즉 새로운 문서가 만들어짐)

      =>만일 재상회의 단독으로 결정할 사안이 아닌 경우 군주의 비서기구에 문서 전달(다시

      새로운 문서가 만들어짐)=>군주가 다시 별도의 교지를 내림

 11. 조선왕조실록처럼 일반 행정문서들도 원본이 아닌 별도 사본(이걸 뭐라 해야할지)이 작성

     되고 행정상 유통되지 않았을지



  Q1. 그런데 이런 추정이 맞다면 이런 (책임자 및 라인이 불명확한) 관료제, (원 기안내용의 진본성이

      보장되지 않는) 문서행정 제도를 뭐라고 해야할지  

  Q2. 그럼 1과 같은 형식과 제도는 언제 어떻게 생겨난 것일까. 

        중세 유럽의 문서들에서도 딱히 '결제라인'을 보지 못한 것 같음

by 愚公 | 2011/11/15 11:02 | Research Object | 트랙백 | 덧글(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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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ed by kai05 at 2011/11/15 22:10
혹시 문서들이 세(3)부 작성되어 하나보내고하나는 상급라인에 보내고 하나는 문서보관기구에 가지 않았을까요?
Commented by 愚公 at 2011/11/16 10:23
기록학사에서는 그런 제도를 '등록소 제도'라고 칭하며 근대 독일의 제도가 시초라고 설명합니다. 전근대 동양사회에서는 원본 문서를 그대로 유통, 보존, 활용하지 않은 것 같습니다.
Commented at 2011/11/15 22:22
비공개 덧글입니다.
Commented by 愚公 at 2011/11/16 10:24
아, 매번 실수하는 군요. 감사합니다.
Commented by 행인1 at 2011/11/15 23:29
고려나 조선시대의 경우 관청의 실무는 서리(아전)이 맡아보는 경우가 많았고 문서를 정서(글자를 바르게 다시쓰는 일)하는 관직이 있는 경우도 있었습니다.(고골리의 소설 '외투'의 주인공이 관청에서 정서하는 일을 하던 하급관리죠)
Commented by 愚公 at 2011/11/16 10:29
원래 정서의 의미는 그게 맞습니다만 당시에 내용의 가감을 절대 금했는지, 실제로 그러했는지 여부는 확인이 어렵군요.
Commented by 번동아제 at 2011/11/16 02:39
하급자가 상급자(국왕 제외), 혹은 하급기관이 상급기관에 올리는 공문서를 첩정이라고 합니다. 첩정을 보낼 때는 첩정의 내용을 요약하고 지시사항을 적어서 회신할 수 있는 여백을 둔 서목이라는 별도의 문서를 첨부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첩정을 받은 상급자(국왕 제외)는 하급자가 보고한 내용을 보고 서목의 여백 부분에 자신의 의견이나 판단, 지시사항을 적은 후 서목 아래 부분에 서압(자기 이름이 아니라 일심 등 특정 문구를 이용한 사인 양식)을 한후 서목을 그대로 하급자에게 되돌려 보냅니다.

하급자가 상급자에게 보내는 첩정은 앞부분에 合行牒呈 이런 문구가 들어가고, 제일 밑에 착명(이름을 변형한 서명), 서압을 동시에 하는 경우가 대부분이어서 구별을 할 수 있습니다.



이와 별개로 상급자(국왕 제외)하급자에게, 혹은 동급기관끼리 공문을 보낼 때는 관,평관의 형식의 문서를 보냅니다. 경우에 따라 조건이 충족될 경우 전령 형태로 보낼 때도 있습니다. 문서에 合行移關 내지 이와 유사한 문구가 보이거나 먹으로 關자 도장을 찍거나 하는 식으로 문서 종류를 표시하고 반드시 착명(자기 이름을 변형한 싸인)이 아니라 서압(일심 등 특정 문구를 변형한 싸인)으로 서명을 해서 내려보내기 때문에 구별하기 어렵지 않습니다.

관은 구체적인 개인 직책이 아니라 조직 명의로 보낼 때도 있습니다. 예를들어 병조나 이조가 관찰사에게 공문을 보낼 때 하단에 직책명과 이름을 적는 공간에 그냥 병조라고 해서 보낼 때도 있습니다.

복잡한 사안이 아니고 당장 특정 명령을 집행하라고 하급 조직에 지시할 때는 감결 형식의 문서를 내려보낼 때도 있습니다. 문서 양식이 관과 조금 다릅니다.


일단 별개의 관료 조직끼리 의사를 교환할 때는 기본적으로 문서로 행하는 것(행이)이 원칙이고, 만약 국왕에게 보고할만한 사안이고 해당 기관이 일정 품계 이상일 때는 국왕에게 직접 보고(계본)할 수 있습니다.

이처럼 오고가는(행이) 문서는 기본적으로 등록 혹은 기타 다른 명칭의 문서철에 문서 내용을 옮겨 적어 보관합니다. 문서 발송 사실을 입안(민간문서의 입안과 다름) 형태로 기록을 남기기도 합니다.

예외적으로 조직 내부에서 명령을 하달할 때도 구두 명령이 아닌 문서화된 명령을 내릴 때가 있는데 이 때는 전령 형식으로 하달합니다. 예를들어 경상좌수사가 좌수영 소속 아전인 도훈도에게 명령을 내릴 때 전령 형식으로 명령을 내린 전령 문서의 초본이 남아있는 사례가 있습니다.

문서의 앞부분에 해당 문서의 근거가 되는 문서의 제목과 내용을 거론하는 것은 현대 문서와 마찬가지이고 첨부서류가 필요할 경우 말그대로 첨부X장 식으로 표기한후 첨부서류를 붙이는 경우도 마찬가지입니다. 문서를 받은 부서에는 문서 끝 왼쪽 여백에 접수 일시와 시간을 표시하기도 하구요, 실무자들이 문서 수발 작성에 관여했을 경우 문서로서의 효력이 없는 뒤쪽에 작은 글씨로 관련 사항을 적기도 합니다.

지방 조직 사이에서는 양 관료들간의 공문서 외에 치통, 회통 같은 형식으로 아전들끼리 직접 무 문서를 주고 받기도 했습니다.

Commented by 번동아제 at 2011/11/16 02:59
질문하신 경우 여러단계의 결재가 필요할 경우 어떻게 하는가...

일단 별도의 문서를 작성할 수 밖에 없습니다. 조선 같은 상하 서열이 분명한 사회에서 미관말직 따위가 작성한 공문서가 순서대로 올라가면서 여러단계의 조직을 거치는건 불가능합니다. 자신의 신분과 상대방의 신분의 상대적 차이에 따라 따져야할 예법 차이가 큰데 그걸 모두 통과할만한 서식을 갖춘 문서라던가 문장은 기본적으로 불가능할 것 같습니다.

예를들어 실제로 병조 경아문의 아전이 초한 문서가 의정부 영의정에 가는 경우를 가정할 때 아전이 쓰고 줄줄이 중간 서명해서 영의정에 간다면 중간의 병조 판서 등이 영의정에게 무례를 범하는 꼴이 되죠. 조직 내부에서 위로 올리는 문서의 서식은 분명하지 않은데 어쨋든 병조 내에서 의견 조율이 끝나면 최종적으로 병조 내지 병조판서 명의의 첩정을 의정부 영의정 앞으로 보내는 수 밖에 없습니다.

임진왜란 중에 흥양현감이 이순신에게 전과 보고한 내용(첩정은 없고 첩정에 첨부한 서목만 남아있음)에 대해 이순신이 통제사 일심이라고 서압해서 서목을 회송하면서 조정에 장계하겠다고 회신한 내용이 있습니다. 즉 흥양현감의 보고 내용이 바로 조정으로 올라가는 것이 아니라 일단 통제사에게 올라가고, 통제사가 다시 상급부서로 공문을 보내는 것이죠.

재작성된 문서의 신뢰성을 어떻게 보장할 것인가하는 문제는

1) 일단 모든 공문서에 근거 문서의 제목과 그 요약 내용을 실어서 언제든지 사후에 원본 근거를 상대방이 확인할 여지를 남겨두고 있고

2) 필요할 경우 근거 문서의 원본 내지 등초를 첨부 형식으로 보낼 수 있으며

3) 문서과 발송과 접수 내용을 등록 내지 그와 유사한 문서대장에 옮겨놓아서 사후 확인에 대비하고 좀 더 엄격한 근거가 필요할 경우 입안에 문서 수발 사실을 기록하고

4) 여러 조직에 이해관계가 얽힌 사안일 경우 정식으로 문서를 주고 받는 당사자가 아니더라도 동시에 여러 관부로 참고하라고 등초된 문서를 보내고

5) 조정 차원에서 결정하는 중요 내용에 대해서는 일종의 관보인 조보를 통해 지방에도 하달하며 (지방 관청에서 조보 구독료를 별도로 납부했음)

6) 조치 사항이 조정 차원에서 연속적이고, 반복적으로 적용될 사안일 경우 절목 형태로 별도의 문서를 만들어 일제히 배부하고

7) 조치 사항이 국왕의 명령 형태로 나갈 경우 조보 게재와 별개로 수교(법전과 유사한 효력이 있는 국왕 명령)로 분류해 문서 하달과 별개로 법전 추록 형태로 배포를 합니다.





Commented by 愚公 at 2011/11/16 10:37
번동아제 /

제가 공부가 게을러서... ㅎ; 술자리에서 나온 얘기를 적어둔 것입니다.

조선시대의 '문서행정 제도'의 구성과 내용이 현대의 그것과 다른데 같은 표현으로 설명해도 되냐는 얘기였습니다. ^^;

19세기 후반 이전의 조선에서 원본 문서 보관조직이나 직위, 보관소 건물 등이 확인된 게 있는지요?
Commented by 시쉐도우 at 2011/11/16 13:54
현대의 그것과는 상당히 다른 것이 당연할 겁니다.

약간 다른 이야기긴 합니다만, 독일과 프랑스의 행정(재판)제도와 관련된 문서의 내용, 배치 등은 지금도 다릅니다. 심지어 프랑스법전의 배치구조는 우리랑 독일과 많이 다릅니다. (이건 형성되어온 연원에서 차이가 있기 때문이 큽니다)

그렇다고 "프랑스는 관료제가 아닌것 같다능?" 이라고 할 수는 없을 것 같습니다. (-.-; 프랑스야 말로 관료제가 빡센 나라가운데 하나인데 말입죠)
Commented by 愚公 at 2011/11/16 23:20
상당히 다른 정도가 심하면 같은 제도라고 보기 어렵고 새롭게 지칭하거나 부가설명이 있어야 겠지요.

저는 기록학적 관점에서 접근하기에 관료제 보다는 문서의 생산, 유통 쪽에 관심이 있습니다.

현대적 기준이나 서구적 기준만을 가지고 단순하게 '문서행정 제도'가 아니라고 해서는 안되겠지만 일단 차이가 있고 연구해볼 만한 가치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원글이 분류된 카테고리가 'Research Object'입니다. 언젠가 저나 누군가 연구하면 좋을 주제의 글을 보존하는 카테고리죠.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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